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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세상 68호] 조선시대 계란의 문화적 의미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24-11-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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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란자조금 vol.68]



계란의 역사

조선시대 계란의 문화적 의미


작은 알에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슈퍼 푸드 계란! 오래전부터 계란의 동그란 모양은 우주를, 노른자와 흰자는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적당한 온도가 갖추어지면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까지 보여주는 계란. 이 계란은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을까? 남아있는 기록과 기사를 통해 계란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알아본다.

우리 민족의 '신화 속 계란' 이야기

우리 건국 신화를 살펴보면 '알'과 관련된 신화들이 많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우리 조상에게 닭과 계란은 어떤 의미였을까? 백마가 울고 알이 깨지면서 사내아이가 나왔다는 박혁거세 신화, 금빛 상자에서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김알지 신화를 통해 '알'을 신성시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고대 인도 사람들이 고구려 또는 고려를 '쿠쿠테스바라' 즉, 계귀국(國)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은 고구려 사람들이 계신을 숭상하여 닭의 깃을 머리에 꽂는 것으로 생각하고 고구려를 계귀국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닭과 계란은 우리 민족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었고 이를 귀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귀한 선물이었던 계란꾸러미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은 계란을 귀하면서도 의미 있는 선물로 여겼다. 생일, 회갑, 결혼 등 경사스러운 날이면 계란을 꾸러미에 담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비숍 여사와 그녀가 타고 온 배를 보러 먼 곳에서부터 청송으로 온 부인들은 비숍 여사에게 달걀을 선물로 주었다.(이사벨라 버드 비숍지음,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살림출판사, 1994.) 1885년 이후 미국인 의사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도 답례품으로 달걀을 주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쉽게 구하기 힘든 고기 대신 계란을 통해 영양을 보충했다. 조선 문헌인 규곤시의방(閏壺是議方), 시의전서(書), 주방문(文)에는 계란탕, 알국, 알탕이 기록되어 있어 계란을 이용한 음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닭은 언제부터 길렀을까

우리나라에서 닭은 옛날부터 계란을 얻기 위해 길렀다. 중국사서인 「수서에 백제에서 닭을 기른다는 기사가 있으며, 중국 의학서인 초본류에서는 약용으로 우리나라의 닭을 써야 한다는 기록도 있다.
수탉은 암탉보다 훨씬 적었는데 수탉은 유정란을 만들어 병아리를 치기 위해서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계란을 얻기 위해 길렀기 때문에 고기는 닭보다 꿩을 주로 먹었다. 일제강점기 계란 증산 정책이 시작되었고 재래종 닭의 달걀이 크기도 작고 수도 적어서 유럽의 레그혼종 등 외국종의 닭이 도입되었다. 조선 농가도 1920년대부터 농가 수입의 확대를 위해 외국종의 닭을 받아들였는데 마 을 하나가 모두 양계를 하는 곳도 많이 생겼다.

조선 농민들의 노력으로 활성화된 양계산업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는 닭과 달걀 생산을 늘리도록 농민들을 독려했지만 조선에서 양계는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했다. '조선에서는 현재 600만 수의 닭이 사육되어 농가 1호 평균 2마리 반에 불과하다. 일본은 농가 1호에 9마리에 달한다. 600만 마리 대부분은 재래종이다. 재래종은 1년 평균 70개의 알을 낳지만 개량종은 달걀을 1년 평균 150~200개 낳는다. 개량종을 사육함이 유익하다. 양계를 장려하면 현재 600만 마리에서 1500만 마리까지 키울 수 있다.(동아일보 1925.08.16. 장래유망한 양계사업)
1930년대가 되자 조선 양계사업의 성공이 보고되기 시작한다. 신문에 실린 양계 성공 경험담은 조선 농민들이 1930년대에 들어 성과를 얻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총독부는 마을에서 양계를 많이 하도록 지원하기도 했는데, 경성에 가까운 경기도 농촌의 예가 신문에 실려 있다. 하나는 파주군 주내면 부곡리로, 27호 농가에서 매호당 11년 수입이 50~70전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2.03.11. 닭알로 갱생한 양계촌 부곡리(상))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서 중요하게 이어져 온 계란

계란은 귀한 물건으로 특별한 기념일이나 행사, 축제에 이용되었고 감기, 기침, 폐 질환 등의 치료에도 활용되었다.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환자의 회복을 돕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속 신화와 전설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시작과 풍요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로 나타났다.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양계산업은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계란은 한국의 삶과 문화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의미는 현대 한국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다.